약국에서 구입한 약이나 병원 처방약은 사용 후에도 남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아플 때를 대비해 보관해두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어떤 약은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것 같고, 어떤 약은 복용하기 꺼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약은 단순한 식품이 아닌 만큼, 함부로 복용하거나 방치하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날짜 지난 약이 먹어도 되는 경우와 반드시 폐기해야 하는 기준, 그리고 올바른 약 보관과 폐기법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총정리한다.
1. 유통기한이 지난 약, 언제까지 먹어도 되는 걸까?
약의 유통기한은 단순히 ‘기한이 지나면 무조건 못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약의 특성과 형태, 보관 조건에 따라 기한이 지난 약이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기한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먼저 유통기한이 지난 약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대표적인 예는 액체 형태의 약, 안약, 연고 등이다. 특히 액상약은 개봉 후 공기나 세균에 노출되기 쉬워, 유통기한이 남아 있어도 한 달 이상 지난 경우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항생제 시럽이나 시럽형 해열제는 개봉 후 세균 번식 위험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에서 안내하는 복용 기간 안에만 사용해야 한다.
반면, 정제(알약) 형태의 약품은 일부 예외가 존재한다. 밀봉 상태로 냉암소에 보관된 경우, 유통기한이 지나더라도 일정 기간 내에는 약효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미 국방부의 약 안정성 프로그램에서는 일부 약물이 유통기한 이후에도 수년간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문적인 검증과 실험을 거친 경우이며, 일반 가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결국 핵심은 약의 외형과 보관 상태다. 약이 변색되었거나 가루가 생기고 냄새가 이상하다면 유통기한과 상관없이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약 포장에 습기가 찼거나, 포장이 손상되었을 경우에도 동일하다. 또한, 한번 개봉된 약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산화되거나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개봉 시점부터의 시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유통기한이 지난 약이라도 정제 형태이고, 보관 상태가 완벽하게 유지되었을 경우 단기 복용은 가능할 수 있으나, 권장되지 않는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 임산부의 경우 절대 유통기한 지난 약을 복용해서는 안 되며, 항상 새 약으로 교체하는 것이 안전하다.
2. 약 복용보다 더 중요한 보관 원칙: 약의 수명은 환경이 결정한다
약의 안정성과 효과는 단순히 유통기한에만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관 환경이다. 같은 약이라도 습기, 온도, 빛, 공기 노출에 따라 약효 유지 기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약국이나 병원에서 제공하는 약품에는 대부분 보관법이 함께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무심코 욕실 선반이나 주방 서랍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보관 원칙은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약을 두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약품은 섭씨 1도에서 25도 사이의 건조한 공간에서 보관하는 것이 적정하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욕실은 습기가 많고 온도 변화가 심하며, 주방은 조리 중 발생하는 열기와 수증기로 인해 약의 성분이 쉽게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이다. 특히 습한 공간은 약이 쉽게 눅눅해지거나 곰팡이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원래의 포장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다. 알약을 플라스틱통에서 꺼내 다른 용기에 옮기거나, 편의를 위해 정리함에 보관할 경우, 약은 공기와의 접촉이 늘어나며 약효가 손실되기 쉽다. 또한, 약 이름과 유통기한, 복용법 등의 정보가 사라지기 때문에 약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개별 포장된 약은 절대로 포장을 훼손하지 말고, 필요 시 약 봉투에 복용 날짜를 적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약품도 있다. 예를 들어 인슐린, 특정 안약, 일부 백신은 냉장 온도(2~8도)에서만 효과가 유지된다. 그러나 냉장고의 문 쪽은 온도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약품은 내부 깊숙한 선반에 보관해야 하며, 냉동은 절대 피해야 한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안전성도 고려해야 한다. 약통을 낮은 위치에 보관하거나 개봉이 쉬운 상태로 방치하면, 아이가 실수로 복용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잠금장치가 있는 보관함이나, 아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약을 두는 것이 필수다.
요약하자면, 약의 수명은 유통기한보다 보관 상태가 더 중요하며, 잘못된 보관은 약을 ‘맹물’로 만들 수 있다. 올바른 환경에서, 포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빛과 습기를 차단한 채 보관하는 것이 약효 유지의 핵심이다.
3. 유통기한 지난 약은 이렇게 버려야 한다 폐기 기준과 주의사항
사용하지 않는 약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발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싱크대, 화장실에 흘려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폐기 방식은 환경 오염을 초래하고, 2차 사고의 위험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폐기법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먼저, 약은 일반 생활폐기물과 달리 의약 폐기물로 분류된다. 이는 곧 약물 성분이 하수나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고, 무심코 섭취되면 동물이나 어린이에게도 위험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항생제나 호르몬제는 하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항생제 내성균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전국의 약국과 보건소를 중심으로 ‘폐의약품 수거함’을 설치하여 일반 시민이 안전하게 약을 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각 지역 보건소나 구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폐약 수거가 가능한 약국이나 기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가져다주면, 해당 기관에서 전문 폐기 업체를 통해 적절히 처리한다.
가정에서 버릴 경우에도 몇 가지 주의사항이 필요하다. 우선 액상약은 절대 하수구에 흘려보내면 안 된다. 가능한 한 흡수성이 좋은 물질(예: 휴지, 커피찌꺼기, 톱밥 등)에 흡수시킨 후 밀봉하여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방법이다. 정제나 캡슐 형태의 약은 포장에서 꺼내어 비닐봉지에 넣고, 물을 부어 녹이거나 내용물을 파손시킨 후 밀봉하여 버린다. 이때, 약 이름이나 복용자가 식별되지 않도록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의료용 주사기, 인슐린 펜 등 특수한 의약 폐기물은 반드시 의료기관이나 지정된 회수처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 일반 가정에서 아무렇게나 버리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약국에서 폐기를 요청하거나 병원 진료 시 직접 반납하는 방법을 권장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약을 아깝다고 무조건 쟁여두지 않는 태도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언제든 혼동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약효가 떨어진 약은 복용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약을 구입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약은 제때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용 여부는 약의 형태, 보관 상태, 대상자에 따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또한 약의 수명은 보관 환경에 좌우되며, 버릴 때도 반드시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는 약이 오히려 위험이 되지 않도록, 오늘 집안 곳곳의 약장을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올바른 약 사용과 관리 습관은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